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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 조합원을 만나다 ⑨ : 이시은 조합원]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조합원 소개

by 비회원 2020. 11.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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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폭염이 끝나고, 어느덧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네요.
아직은 일교차가 크니, 조합원 여러분 환절기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인터뷰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에이유디에서 열일하고 계시는 문자통역사이자 생산자 조합원이신 이시은 문자통역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생산자 조합원 이시은 문자통역사님

안녕하세요, 이시은님. 먼저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생산자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자통역사 이시은이라고 합니다. 에이유디 문자통역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일주일에 세 번 나가서 학습지원도우미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나 쉐어타이핑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지인이 실시간 문자통역을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셔서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알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개념에 대해 전혀 몰랐고, 심지어 ‘문자통역’이라는 말도 없었거든요. ‘문자통역’이라는 말을 에이유디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에이유디에서 일하기 전에는 방송자막에서 일을 했었고, 그 외에 회의록이나 녹취록 번문 등의 일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일도 아주 많지 않았고 보수도 적은 편이었는데, 이렇게 에이유디를 만나서 요즘 문자통역 일을 많이 하게 되니까 뿌듯하고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답니다.

문자통역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에는 ‘문자통역사’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몰랐어요. ‘속기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거든요. 속기사가 된 것도 처음부터 꿈꾸던 일은 아니었어요. 저는 원래 어릴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미술을 전공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게 되면서, 자연스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 속에서 속기사가 나온 거예요. 다시 생각해도 황당한 순간이었는데, 어쨌든 그 꿈을 꾸고 나서 속기사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소 황당한 꿈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주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속기사가 되라는 신의 계시였던 것 같네요. (웃음)


쉐어타이핑 문자통역서비스를 하면서,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얼마 전에 나다페스티벌이 있었잖아요. 제가 그 행사에서 문자통역을 했었어요. 그 때, 스마트 글래스를 처음으로 접했어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용하는 것을 직접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청각장애인 분들이 나다페스티벌에서 스마트 글래스를 쓰고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공연 후에 저한테 덕분에 즐길 수 있었고 아주 잘 봤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아무래도 이게 바로 문자통역사로서 느끼는 자부심이 아닐까 싶어요.

문자통역사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뿌듯한 순간은 사실 누구나 그럴 텐데, 일단 문자통역이 끝나고 나면 덕분에 잘 들을 수 있었다고 해주실 때 굉장히 뿌듯합니다. 또, 제가 나갔던 문자통역 현장에서 강연자 분께서 강연 도중에 짤막한 농담을 하셨는데, 제가 그 상황에서 농담을 그대로 받아적어드렸거든요. 그런데, 청각장애인분께서 그걸 읽자마자 웃으셨어요.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저는 뿌듯하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뭔가 작은 농담 하나에도 청각장애인 분이 소외되지 않도록 연결다리가 되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랄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웃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등 그런 작은 리액션에도 뭔가 손가락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와 반대로 힘들 때는, 역시 내용은 어려운데, 발화자의 말은 빠르고 심지어 발음이 부정확할 때 통역이 어렵더라고요. 말은 빨라도 발음만 정확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입모양을 또렷히 하지 않고 웅얼웅얼거릴 때는 진짜 치기 힘들더라고요. 흔히, 속사포 랩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듣는 기분이랄까요.
또, 그럴 때마다 저는 괜히 큰 자괴감에 빠지게 돼요. 특히, 청각장애인 분께서 제가 통역해드리는 것을 보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못 알아듣고 받아적지 못할 때, 청각장애인 분께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게 되어서 그럴 때 정말 힘든답니다. 그러면서도 말의 빠르기나 발음의 정확도 등 여러 조건에 상관없이 다 받아적을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실력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문자통역사로 일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변화가 있나요?
저는 ‘문자통역사’와 ‘속기사’라는 직업을 따로 보는 편이거든요. 사실 속기사가 문자통역을 다 아우르는 직업이기는 해요. 제가 처음에는 자막방송으로 시작했었고, 회의록이나 녹취록 번문 등의 일을 했었죠. 물론 필요한 일이고 작업이지만, 저한테는 별로 보람이 없었어요. 게다가 사실 녹취록은 대부분 무거운 내용이 주가 됐었고, 하루종일 들으면서 받아적어야 했고. 게다가 음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또, 워낙 참을성이 너무 없어서 그런지 번문하는 일도 워낙 힘들었어요. 그래도 자막방송 일은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보람이 있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청각장애인 분을 대면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약간은 폐쇄적인 느낌도 들었고, 청각장애인 분의 입장에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적었고 직업적인 자부심도 부족했어요.
에이유디에서 문자통역 일을 하게 되면서, 직접 청각장애인 분 옆에서 통역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것에서 큰 차이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농담을 그대로 받아적을 때 오는 사소한 리액션과 표정을 바로 보니까, 현장감도 느껴지고 비로소 직업적인 자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이전에는 거의 수동적이었다면, 지금은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있어요.
또, 청각장애인이라면 쉽게 인지하기 힘든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갑자기 침묵이 흐르거나 주변에 소리가 나는 상황 등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저한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조합원 중 한 명으로서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자랑한다면?
일단 저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 말 그대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실천하고픈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에이유디를 알게 되었을 때는 사실 ‘협동조합’의 ‘협’자도 몰랐고 무슨 목적으로 설립된 것인지도 잘 몰랐었어요. 일반 속기사무소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처음에 이사장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진심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가끔은 문득 제 주위에 그런 사람들과 그런 조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해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지금보다 더 많이 발전하고 더욱 커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문자통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수많은 곳에 ‘다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발전하고 커져서도 지금처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협동조합으로 굳건히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문자통역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저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해요.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조합원 인터뷰의 공식질문이자 공통질문을 드릴게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000다.” 그 이유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연결이다.”
청각장애인과 세상 사이에 끊어진 틈을 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 착실히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청각장애인 분들이 안심하고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튼튼한 고리가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멋진 한마디를 남겨주셨네요. 앞으로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 더욱 잘 돼서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커져서 청각장애인 모두가 세상과 매끄럽게 잘 연결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계시는 우리 이시은 조합원님, 앞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더욱 멋지게 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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